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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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에서 인심난다. 나의 꿈은 좋은 설계가이였고 그 꿈을 위해 오랫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이제는 그저 열심히 했던 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만 남았다. 좋은 설계가는 열정과 책임을 가지고 해야 하지만 좋은 시공자를 만나야 가능성이 열리고, 좋은 시공자는 좋은 사회여건에서 가능하다.

설계도서에서 레벨이 10만 차이나도 설계가 다 엉터리고 그림이라고 매도하는 시공자, 설계의미도 의도로 모른 채 용이한 시공, 하자 전혀 안 나는 시공으로 현장에서 행해지는 설계변경, 설계가는 좋은 설계와 공간을 위해, 시공자는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해 발주처는 시스템으로 하나의 목표가 아닌 서로 목표로 방향이 달리하고 있다.

모름지기 각자의 역할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지만 본질은 같아야 하고 분명 교집합은 있을 터인데이 모두 부질없는 핑계이지만 그래도 부질없는 얘기를 하고자한다. 옛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지금처럼 각박한 설계, 시공, 발주환경에서는 참으로 좋은 공간을 만들기가 요원한 것 같다.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더 각박하고 서로를 의심하고 너무나도 서글픈 사회변화이다. 어쩌면 과거에 그 수많은 비리가 이제는 낭만으로 느껴질 만큼 우리 사회는 살기 힘든 사회가 된 것 같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 15년 전 대기업에 근무하다 작은 설계사무실을 개소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 많은 분들이 우려하셨다. 준비도 없이 일을 시작하는 내가 무척이나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막상 그 대기업의 우산을 벗고 작은 설계사무실을 하고보니 의외로 민간영역도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호황은 잠깐이고 수년간 어려운 경제가 지속되어 이제는 한계점에 다 달은 듯 하다.

우리 분야는 물론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그 동안 많이 만들었고 경제 자체가 우리만이 아닌 세계경제와 연관되어 있기에 우리만의 문제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공공과 민간의 역할이 있고 시대에 따라 서로 상호 보완하는 관계가 좋은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경제가 안 좋을 때는 공공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경기가 좋을 때는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그 역할과 기능을 하면서 경제를 끌어가야 하는데 과연 공공에서 민간이 하여야 할 역할마저 뺏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많은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살펴본다는 하지만 개인이 아닌 국가가 불공정한 관행을 할 경우 누가 살필 것인가? 경제학자는 아니기에 진단이 어설프고 합리적이지 못하겠지만 정확한 진단, 통계수치가 아닌 현재 우리 분야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에 대한 의견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에서 걱정은 되지만 직접 사업을 하기 보다는 기업을 통해 사업이 잘 되도록 즉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이것저것 깍기 보다는 기준에 적합하게 주어 사업의욕을 고취시켜야 하는데......경제는 기업이 하는 것이지 정부가 직접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한민국이 주식회사인가?

콩고물 떡고물 지금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전설따라 삼천리얘기이지만 살아가면서 여유가 있으면 좋지만 하다못해 고물이 떨어져야 살수 있다는 얘기로 나이 드신 분들은 이해 가능한 옛날 얘기이다. 열심히 일을 해 종합소득세이던 부가가치세이던 어떤 항목이라도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고, 정부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또 국민을 상대로 장사한다면 국민은 무엇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할 것인가?

개인과 국가의 그 역할이 있고 어쩌면 국가에서 집행하는 떡은 충분한 고물을 묻혀야지 탈탈 털어 그나마 개인이 가진 고물을 역으로 묻힌다면? 고물이 있어야 개인은 가족과 친구와 나눌 수 있지 않은가?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절감도 아닌 시장시세와는 전혀 맞지 않는 떡을 그래도 혹시나 해서 또는 할 수 없어 먹으려 하다 도리어 고물이 없으면 내 노동력이라도 바쳐야 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닌가? 이러한 관행이 현재 청년, 노후 등 어려운 경제에 과연 보탬이 되는 행동인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누어주기보다는 과거처럼 느슨하지도 불투명하지도 않은 여건임에도 무조건적인 절감으로 예산을 삭감하기보다는 시스템에 맞는 합리적인 예산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구조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시장에서는 1,000원도 넘는 것을 단가를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200원에 하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의 제도와 관행을 보면 조경설계시공에 참여하는 국민은 대한민국주식회사의 고용자인데 그 고용은 안정되지도 노후보장도 되지 못하는 고용이라면 재고해야 하지 않는가! 설계비도 문제이지만 시공은 더 큰 문제이다.

현재 시스템 중 도급자가 직영으로 시공하는 경우가 있는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하도업체는 사회생태계를 지탱하는 가장 아래로 이 생태계가 무너지면 위 단계 생태계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저가도 들어오는데 무슨 소리냐고 얘기할 수 도 있지만 좋은 회사는 몇 번 이런 일을 반복하면 이 분야에서 떠날 수 있다.

개인은 조달청에 물건을 납품하고 자치단체는 조달수수료를 내기보다는 굳이 중앙정부가 중간에서 개인이 취해야 할 이익을 가로채기보다 개인 간의 경제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과거처럼 콩고물 떡고물이 한 개인의 부당한 이익이 아닌 많은 개안들의 경제활동에 윤활유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공공에서 진정한 절감이 아닌 절감행위만을 위한 현재 시스템은 현실적인 시세반영을 어렵지만 장사로 치면 후려치는 것은 더 이상은 안했으면 한다. 지금의 이 시스템은 좋은 취지로 만들었지만 나쁜 결과를 그것도 사회 전반에 해악을 끼친다면 방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 이 조달시스템은 개인 간의 신뢰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정부가 최소한의 조정 역활이라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하였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조정을 넘는 듯 하다.

못하는 것인가 안하는 것인가? 이런 얘기를 수없이 해도 개선은 안 되고 있다 이유는 못한다고 하지만 못하기보다는 안한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은 아닌지? 나만 살겠다는 생각, 각자도생이 지금은 잘 살 수 있지만 결국 아닐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선동적인 용어가 아니라도 혼자 가면 멀리가지 못하지만 같이 가면 멀리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마치 생태계에서 한 종이 멸실되면 다른 종도 영향을 미쳐 종국에는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듯이. 어려움 때이다. 하여 더욱 혼자가 아닌 같이 헤쳐가야 하는데 뭐 그리 대단한 기술과 보안이라고 뭉치지 못하고 서로 갈라지는지 그것이 안타깝다.

자반고등어와 생물고등어 생선으로 치면 식물은 자반고등어인가 생물고등어인가? 공공에서 시행하는 공사문제에 있어 조달문제를 이제 공론화하고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하도 답답하여 건축에 물어보니 건축에서는 공공조달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 건축재료 중 살아있는 생물 자재가 과연 얼마나 있는가? 반면 조경의 주요 소재인 식물을 조달로 받는 관행은 우선 개선되어야 한다. 설계자의 창의성을 죽이고 시공자의 자긍심을 느낄 수 없는 하여 조악한 시공결과를 만들어 내왔던 조달관행을 일시에 변화할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1차적으로 식물부터 그 비율을 낮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물이 아니라도 소운반이 필요한 자재의 경우 이러한 것을 반영을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 어느 시공자의 얘기. 분명 조달은 늘 현장도착도라고 하지만 조경현장이 넓을 경우 현장도착에서 현장은 어느 지점을 의미 하는가? 1.2×1.2m 가로수보호틀 평균무게 의 수목보호틀을 한 곳에 도착시킨다면 시공자는 그 하나하나를 운반하느라 산정해주지도 않은 인력 즉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인 것인가? 없는 것을 더 달라는 얘기는 아니다. 기준에 있으면 지급하지 않으면 징계를 주어야지 기준에 있는데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상장을 주는 것은 문제 아닌가? 이제부터 산철쭉이 아닌rododendron으로 모 시에서 자문을 한 경우가 있다. 시민들은 공원포장은 주변 도로포장과 같은 포장재료가 아닌 공원다운 포장재로 시공해달라고 한다. 도로포장재와 똑 같은 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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